전시

특별전

조선시대의 지도 / 양보경 - 양보경 / 성신여대 교수 N

No.1214092
  • 작성자 허미영
  • 등록일 : 2012.07.25 16:36
  • 조회수 : 994
조선시대의 지도
 
양보경/성신여대 교수
 
  
  지도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우리나라의 선사시대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에도 지도에 가까운 요소들이 많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우리나라의 지도도 고구려시대의 고분 벽화인 요동성총(遼東城塚)에 있는 <요동성도>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조선시대 이전에 제작된 단독 지도로 전해지는 것은 없다. 조선 전기의 지도도 손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다. 조선 건국 후 세종 ·세조대의 과학기술의 발전과 지도 제작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은 세조대에 이르러 유명한 지리학자였던 정척(鄭陟)과 양성지(梁誠之)가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완성함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단독 지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里歷代國都之圖)>(1402년)이며, 이 지도는 일본으로부터 유럽·아프리카까지 그린, 당시 최고 수준의 세계지도였다.
   목판으로 간행된 전국지리지인『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1530년) 중에는 전국지도인 (팔도총도(핀보뼘토))와 팔도의 도별지도(죠째밴료)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지도들은 보통『동람도(東覽圖)라 불렀다.『동람도』는 비록 매우 간략한 형태였으나 간행본이었기 때문에 민간에 미친 파급효과가 컸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이전은 물론 조선 후기까지 이를 모방한 목판본 지도와 필사본 지도들이 다수 제작되 었다.
   영남대학교에도 15종이 넘는 『동람도』 유형의 지도가 있다 이 가운데에는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람도』와 같은 오래된 지도도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의 지도가 비약적으로 발전을 본 것은 18세기 였다. 18세기 이후 조선의 지도에는 몇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첫째, 대축적지도가 발달하여 지도에 표시되는 내용이 정확하고, 상세 하고 풍부해졌다.
   둘째, 다양한 종류의 지도가 활발하게 편찬되어 성곽지도, 해안을 그린 지도, 봉수도 ·궁귈도, 관청을 그린 관아도·목장지도 등 여러 유형의 지도들이 제작되었다.
   셋째, 지방 각 군현을 그린 지도 제작이 급증하였다 군현지도의 증가는 회화식 지도의 발달, 그리고 방안(方眼)지도의 발달을 수반하였다.
   넷째, 목판본·수진본(袖珍本) 지도의 제작으로 민간에도 지도의 보급이 확대되었다.
   다섯째, 서양지도와 서양의 지리지식의 유입과 수용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지구와 지도 제작에 관한 새로운 인식이 확대되었다
   18세기 대축적지도의 발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지도학자는 정상기(鄭尙驥 : 1678∼1752)와 그 후손들이다. 김정호보다 한 세기 앞선 시기의 실학자
 
 정상기는 당시의 지도제작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제작하였다. 그의 아들·손자, 그리고 증손인 정수영(鄭遂榮 : 1743∼1831) 등 4대에 걸쳐 지도 제작이 계속되었다. 정상기의 지도는 일정한 축척을 사용하여 도별지도를 합하여 전도가 되도록 고안한 점, 축척인 백리척(百里尺)을 표시하여 지도상에서 거리를 계산할 수 있도록 한 점, 약 1:42만(萬)의 대축척으로 지도가 커짐에 따라 도로 ·봉수 ·지명 등 인문지리학적인 내용을 상세하게 나타낸 점, 조선의 윤곽, 특히 북부지방의 윤곽이 정확해진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후의 조선지도들은 이 지도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았다.
   영남대학교에도 정상기형의 지도가 10여 종 소장되어 있다. 도별지도 외에 도성도(都城圖)가 따로 앞에 있는 지도도 있다. 정상기의 발문과 백리척(百里尺)이 표시되어 있는 지도도 있다.<고지도첩>등은 이 유형의 대표적인 지도이다.
   18세기에는 지방 각 지역을 그린 군현지도의 제작이 급증하였다. 또 지도의 활성화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발달과 어우러져 사실감이 가득한 회화식 지도를 발달시켰다. 그리고 군현지도를 모은 도별 군현지도집의 제작이 활발하였다. 영남대학교에 있는 <호서전도(湖西全圖)>『영남지도 (嶺南地圖)『전라남북도여지도(全羅南北道與地圖) 등은 조선 후기에 유행하였던 도별 군현지도집의 유형이다.
   18세기에는 방안지도(方眼地圖)의 제작도 두드러졌다. 방안지도는 지도 안에 1리, 혹은 10·20리 방안을 그리고 그 위에 지도를 그리기 때문에 지역과 지역간의 거리, 지역간의 연결·방위·위치 등이 더욱 정확하고 정교하게 된다. 김정호가 만든 전국지도들도 방안지도이다. 영남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김정호의<청구도(靑丘圖)>는 전국을 남북 29층, 동서 22판으로,<대동여지도(大東與地圖)>는 남북 22층, 동서 19판으로 구획 한 방안지도 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옛 지도에 마지막 꽃을 피운 것은 19세기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만든 <대동여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내용상으로는 지지(地誌)에 기초하여 풍부하고 상세한 정보를 수록함은 물론, 지도학적으로는 조선 후기에 꾸준히 이루어졌던 지도 발달의 성과가 종합된 지도이다. <대동여지도>의 가장 뛰어난 점은 일목요연한 대축척 전국지도를 만들었던 데에 있다. 전국지도를 간편한 형태로 고안하고, 목판본으로 간행함으로써 지도의 대중화와 보급에 기여 하였다.
   김정호는 정밀한 지도의 보급이라는 사회적 욕구와 변화를 인식하고 그것을 실현하여 민중의 손으로 넘겨 주었던 것이다.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근거한 많은 지도들이 민간의 손에 의해 필요한 크기대로 복제되고 또 복제되었다.